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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로로 보면 산줄기요 세로로 보면 봉우리라.橫看成領側成峰
  • 불개구소시치인不開口笑是痴人 입 벌려 웃지않으면 바보!!
  • 산불재고山不在高 유선즉명 有仙則名 산은 높고낮음에 달린 것이 아니고 신선이 살아야 이름을 날린다.
석각 石刻

설악산 계조굴繼祖窟 석각을 찾아!

by 검은마루 2021. 10. 26.

자연속의 역사기록. 석각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기록문화입니다.

종이가 귀하고 구할수도 없던 시절...돌과 목판에 새길수 있는것은 당시 선비들에겐 큰 영광이었습니다.

결혼식장가서 주인공을 축하하며 방명록에 희망의 글귀를 바명록에 남기듯...옛 선인들은 자연을 이용하여 다양한 기록들을 남겼습니다. 그중 설악산에 비선대와 함께 계조굴 석각을 찾아 울산바위로 향합니다.

계조굴繼祖窟 윤사국서尹師國書

윤사국尹師國 1728(영조 4)∼1809(순조 9).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빈경賓卿, 호는 직암直庵. 증조는 윤서적尹叙績이고, 할아버지는 윤지순尹志淳이다. 아버지는 관찰사 윤경룡尹敬龍이다. 진사 윤경종尹敬宗에게 입양되었다.

1759년(영조 35)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곧 예문관에 들어가고, 이어 양호감운어사(兩湖監運御史)·지평·경상도암행어사·정언·수찬·승지·대사간 등을 역임하고, 외직으로는 안동현감·동래부사가 되었다. 1783년(정조 7)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대사헌·대사성을 거쳐 강원도감찰사가 되었다가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서 공조·형조의 판서와 강화유수·한성판윤을 역임하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나이 80세가 되자 숭록대부崇祿大夫의 관계에 승진하여 판돈녕부사가 되었다.

서예에 뛰어난 재주가 있어, 조정의 금보金寶·옥책玉冊과 당시 사찰·누관樓觀의 편액扁額을 많이 썼다.

계조암繼祖庵은 신흥사 북서쪽 2.3㎞ 지점 울산바위 밑에있는 자연 석굴로 된 암자이다.

흔희 흔들바위가 있는곳은 알지만 그곳이 계조암이라는것은 잘 알지 못한다. 신라 자장율사가 수도하기 위해 처음 만들었다는데 그 뒤 원효·의상·지각·봉정 등 여러 조사(祖師)들이 대를 물려 수도하였다고 하여 ‘계조(繼祖)’라는 이름이 붙여진 암자이다.

그리고 그 옆의 바위에는 수많은 개인 이름들이 음각되어 있는데 그중 계조굴繼祖窟이라는 큰 글자가 상징적이다. 계조굴繼祖窟각자刻字 옆에는 윤사국서尹師國書라고 새겨진 글자가 있는데 이를 통해 이 각자가 조선 정조 때의 서예가이자 판서 벼슬을 지낸 윤사국尹師國이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윤사국尹師國은 조선 정조(正祖) 14년(1790)에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인물이다.

바위암벽 좌측에 세로로 계조굴이라 쓰여있고 하단쪽에도 계조굴이라 세겨있다.

새겨진 내용들을 대략 살펴보면 

도순사서유방 서기수 홍재철 심선보 선항 승택 김성희

도순사이병정

서정보 서함희 신대년 이상악 심안지

홍한주洪翰周 윤치용 윤치정 서유영

서명선 서종원 김창하

관찰사조봉진 지부이진백 한시용 김덕필 오장묵 이인묵 이노춘 홍석필 이정모

관찰사홍경모

관찰사신헌조觀察使申獻朝

이일증 민홍열 김이표 민양열 민종열

오필선 이교익

이영옥 이선병 박중훈 박성훈 이문상 겸0

불근시주질佛根施主秩(부처의 근원) 우은명 최우위 김필상 이재양이재웅 日免首日 化主守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