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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로로 보면 산줄기요 세로로 보면 봉우리라.橫看成領側成峰
  • 불개구소시치인不開口笑是痴人 입 벌려 웃지않으면 바보!!
  • 산불재고山不在高 유선즉명 有仙則名 산은 높고낮음에 달린 것이 아니고 신선이 살아야 이름을 날린다.

연호사2

합천 연호사烟湖寺 함벽루涵碧樓 석각 ② 보장천추寶藏千秋 돌도사와 떠나는 석각石刻기행 합천 연호사烟湖寺 함벽루涵碧樓 석각 ② 우암송시열의 석각 연호사 함벽루가 있는 뒤쪽 바위벽에는 송시열이 썼다는 함벽루 석각과 함께 작은 글씨로 기문의 내용을 요약하여 새겨 놓았다. 함벽루 석각 끝에는 우암이라는 이름이 새겨있어 송시열이 쓴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우암의 낙관은 해인사 홍류동에 새긴 취치원 둔세시의 ‘우암서’와 필체가 비슷하다. 추측컨대 비슷한 시기에 쓰고 새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암 송시열의 친필인 함벽루 석각은 석벽을 평평히 깎아 내고 그 위에 세로로 힘차게 글을 쓰고 음각으로 새겼으며 우측에는 함벽루기涵碧樓記의 내용이 요약되어 새겨 있고 석각 위에는 닷집을 끼워 넣어 보호각 역할과 함께 함벽루 석각을 은은히 돋보이게 하고 있다. 글자체에.. 2017. 11. 7.
합천 연호사烟湖寺 함벽루涵碧樓 석각 ① 보장천추寶藏千秋 돌도사와 떠나는 석각石刻기행 합천 연호사烟湖寺 함벽루涵碧樓 석각 ① 연호사烟湖寺 석각 연호사 전경 연호사烟湖寺 석각 연호사烟湖寺 합천 연호사烟湖寺는 해인사의 말사로 신라 선덕여왕12(643)년에 와우 선사가 창건 했다. 백제 윤충장군이 2만의 대군을 이끌고 대야성을 함락 시켰는데, 그때 신라장병 2천여 명이 전사하고 1천여 명이 포로로 잡힌 대야성의 전투에서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 합천의 성주는 김춘추의 사위인 김품석 이었는데 그는 민생을 돌보지 않고 오히려 민심을 이반 시키고 뒤숭숭하게 해서 결국은 백제의 공격을 받고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체 항복해서 죽임을 당했다. 당시 검일이라는 평민은 아내를 김품석에게 빼앗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윤충이 이끄는 백제군에게 성문을 .. 2017. 1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