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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로로 보면 산줄기요 세로로 보면 봉우리라.橫看成領側成峰
  • 불개구소시치인不開口笑是痴人 입 벌려 웃지않으면 바보!!
  • 산불재고山不在高 유선즉명 有仙則名 산은 높고낮음에 달린 것이 아니고 신선이 살아야 이름을 날린다.
석각 石刻

두타산 삼화사 무릉계곡

by 검은마루 2021. 8. 27.

무릉계곡, 금란정 - 삼화사 - 용추, 쌍폭

강원도 동해시 삼화면(동해시 무릉로 538)에 위치한 무릉계곡. 두타산(해발 1353m)과 청옥산(靑玉山, 해발 1404m), 고적대(高積臺, 해발 1354m)에서 발원한 계류들이 흐르는 계곡이다. 삼화사 입구 무릉계곡 바위에는 ‘무릉선원武陵仙院 중대천석中坮泉石두 타동천頭陀洞天’이라는 초서의 대형 석각이 반석위에 새겨있어 그 아름다움을 더하며 무릉계곡의 곳곳이 옛 선비들의 이름각자와 모임에 동참한 이들의 성명이 새겨져 있어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다. 선인이 노니는 곳이라 하여 ‘무릉도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삼화사와 금란정과 함께 석각글씨는 두타산과 두타계곡을 빛내주는 상징이 되었다.

무릉계 석각글씨를 찾아 삼척으로 떠난다.

금란정

금란정은 한말까지 전국의 향교 명륜당에서 유림들이 유학강론에 전념하였으나 갑신정변과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일제에 대항하기 위해 1903년 4월 삼척향교 소속 유림 38명이 조직한 구국단체로 출발한 것이 금란계이다. 1945년 해방을 맞으면서 금란계원과 그 후손들이 선인의 뜻을 계승하여 정자를 짓기로 합의하고 1947년 9월에 북평동 단봉 석경 등에 금란정을 건립하였고 1958년 9월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금란계원金蘭契員 정사4월일

계 창립 당시 계원수는 초대 계수 홍재문(洪在文) 이하 38명이었고, 그 명단이 금란정에 걸려있으며, 무릉반석에도 계원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고 하며 매년 춘추, 계원들이 모여 시회동을 개최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릉선원武陵仙源 중대천석中臺泉石 두타동천頭陀洞天이라는 초서草書 12자와 함께 각 시대의 명인들의 필적들이 각이되어 있고 부근에는 금란계원명이 함께 새겨져 있다. 이 ‘무릉선원武陵仙源 중대천석中臺泉石 두타동천頭陀洞天’ 이라는 석각은 무릉계곡의 신비한 경치를 노래한 내용으로 그 아래에는 '옥호거사서신미玉壺居士書辛未'라고 쓴 7자의 관시가 새겨있다.

무릉선원武陵仙院 중대천석中坮泉石 두타동천頭陀洞天

무릉계는 신선의 거처요, 바위에 샘솟는 계곡이요, 나와 내 것을 내려놓는 별천지로다!(인터넷 자료)

봉래양사언의 글이라는 설과 1700년대 경상도사를 지낸 미중 정하언의 글이란 설이 공존한다.

무릉선원武陵仙源

중대천석中臺泉石

두타동천頭陀洞天

산고수장

무릉계武陵溪

박내정朴乃貞

1664년(현종 5)~1735년(영조 11). 조선 중기 문신. 관직은 정언(正言)‧지평(持平)‧집의(執義)‧동래부사(東萊府使)‧승지(承旨)‧양양부사(襄陽府使)‧형조참판(刑曹參判)‧좌윤(左尹)‧판윤(判尹)‧호조판서(戶曹判書) 등을 역임하였으며,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갔다.

유한준兪漢雋

1732(영조 8)∼1811(순조 11). 조선 후기의 문장가·서화가.

정조때 삼척부사를 지내던 당시 무릉계곡 용추폭포 용추소 벼랑에 龍湫(용추) 두 글자를 이름지어 썼다.(1797년 12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전과 같지 않더라.

이 말은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 유한준이 남긴 명언으로 이 구절의 원문은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입니다. 이는 정조 때의 문장가인 유한준(兪漢雋, 1732 - 1811)이 당대의 수장가였던 김광국(金光國)의 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에 써준 발문에서 따온 것입니다.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 간즉축지이비도축야

이를 옮기면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 입니다.

이 문장으로 "아는 만큼 보인다" 즉, "알아야 참으로 보게 된다"라는 뜻의 한문을 만들면, "지즉위진간(知則爲眞看)"이 됩니다. (인터넷에서 발췌)

의관議官 양성사梁性祠-의관議官 조선 시대 말 중추원(中樞院)의 한 벼슬. 고종 32년(1895)에 두었다가 광무 9년(1905) 찬의(贊議)로 고쳤음.

이화李墷

1820년(순조 20) 가을에 동래 부사 이화李墷[1820년 3월~1821년 2월 재임]

토포사討捕使(추노꾼?)

강릉 영임서營林署 - 산림청 소속으로 국유임야國有林野 및 귀속임야歸屬林野를 관리하고 경영하는 지방 관서.

삼화사 비로전...복원공사중인데 건물을 양쪽으로 쪼개 기둥을 붙이는 공사인것같은데...이런방법도 있네.

템플건물과 학소대

용추폭

용추 유한준...무릉반석에 새겨있었는데 용추폭포에도 새겨있다.

별유천지別有天地 폭포를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신선의 세계 별천지에 온듯한 느낌이다.

무인모춘戊寅暮春 광릉귀객廣陵歸客

이태백(李太白) 

問余何事栖碧山 (문여하사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부답심자한)

桃花流水窅然去 (도화유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내게 묻기를 무슨 일로 푸른 산에 은둔해 사는냐는데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아도 마음은 저절로 한가롭네

복숭아꽃 물에 흘러 아득히 떠내려 가니

별천지요 인간세상이 아니네

쌍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