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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로로 보면 산줄기요 세로로 보면 봉우리라.橫看成領側成峰
  • 불개구소시치인不開口笑是痴人 입 벌려 웃지않으면 바보!!
  • 산불재고山不在高 유선즉명 有仙則名 산은 높고낮음에 달린 것이 아니고 신선이 살아야 이름을 날린다.
사찰 , 문화유산, 가고파

함양 거연정, 동호정, 농월정, 광풍루 2022 3 29

by 검은마루 2022. 3. 30.

황석산 산행후 대한민국 대표정자를 찾았습니다.

 

함양 화림동花林洞 거연정居然亭

 

거연정으로 건너는 길에 홍교, 무지개다리가 있다. 이 다리를 '화림교'라 하고 흐르는 물을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간다'는 뜻의 '방화수류천(訪花隨柳川)이라 부르며, 바위에 방수천訪隨川이라는 각자가 있다.
거연정은 화림재(花林齋) 전시서(全時敍, 선조34∼인조17) 선생이 1640년경 서산서원을 지을 때 그 곁에 억새로 만든 정자였다고 한다. 1853년 화재로 서원이 불타고 이듬해 복구하였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은 철폐되었고, 이에 1872년 화림재 선생의 7대손인 전재학(全在學), 전민진(全愍鎭) 등이 억새로 된 정자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서산서원의 재목으로 정자를 다시 지었다고 한다. 1901년에 중수하였다. 황석산가는 우전마을 입구에 거연정이 자리한다.
거연정 편액
송병선 송병순 - 수승대 거북바위에도 이름이 새겨있다.
방수천訪随川 석각 崇禎 後 三 己丑 孟夏(숭정 후 삼 기축 맹하):1769년 음력 4월에 새김.
일월대 석각...지리산 천왕봉에도 일월대 석각이 있었는데...심석心石 송병순宋秉珣

 

함양 동호정東湖亭

너럭바위가 장관입니다.
차일암遮日岩 영가대詠歌臺
금적암琴笛岩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선조 임금의 의주몽진을 도와 공을 세운 동호 장만리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이곳에서 유영하던 곳으로 그 충성심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9대손 가선대부오위장을 지낸 장재헌 등이 중심이 되어 1890년 건립한 정자이며 1936년에 중수가 있었다. 동호정은 정면3칸, 측면 2칸 규모로 세워진 단동의 중층 누각건물이며 겹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이다. 동호정은 호반의 암자 위에 건립된 정자건물로서 화림동의 계곡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며 그 아래 수정같은 맑은 물이 흐르며 물 가운데 차일암이라는 너럭바위가 있어 수백명이 들어설 수 있는 널찍한 암반으로 경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계곡 돌계단이 아름답습니다.

 

함양 화림동花林洞 농월정弄月亭

함양의 농월정은 화림동계곡에 자리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자이다. 조선 선조 때의 학자 지족당 박명부(1571-1639)가 1637년 지은 정자로 고향에 은거하며 지은 정자이다. 그는 병자호란때 남한산성에서 강화를 반대한 척화파의 한 사람으로 끝내 치욕적인 강화가 이루어지자 벼슬을 버리고 물러나 여기 농월정을 짓고 은거하였다. 옆 동네 원학동의 동계정온과 한길을 간 것이다. 농월정이라는 이름은 '달을 희롱한다'는 뜻으로 계곡을 비추는 밝은 달을 즐기며 살겠다는 음풍농월吟風弄月의 뜻이 담겨있다.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屨之所 지족당이 지팡이 집고 산책하던 곳.&nbsp; &nbsp;고향 화림동으로 은거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박명부의 은거시는 농월정에서 상류로 50여미터 떨어진 계곡 암벽에 새겨있는데 아마도 후손에 의해 후대에 새겨진 것으로 보인다. ▶농월정弄月亭 辛未(1631) 로방수식별구유路傍誰識別區幽 길 곁에 그윽한 별천지가 있는 줄 누가 알리 산약반회수약류山若盤回水若留 산은 구비 구비 도는 듯 물은 멈춰 있는 듯 영체지당징갱만暎砌池塘澄更滿 섬돌을 비추이는 월연의 물 맑고도 그득하고 박창람취권환부撲窓嵐翠捲還浮 창에 드리운 푸른 남기 걷혔다 비췄다 하네 아기부온전호구兒飢不慍饘糊口 아이는 굶주려도 쪼들린 가난에 성내지 않고 객지녕혐옥타두客至寧嫌屋打頭 손이 이르러 천장에 머리가 부딪힌들 저어하랴 막도산인무사업莫道散人無事業 하는 일 없는 한가한 사람이라 말하지 마소 만전구학역풍류晩專邱壑亦風流 늘그막에 산골짝을 차지한 것 또한 풍류라오 지족당知足堂 박명부

 

 

함양 안의 광풍루光風樓

조선 초인 1421년에 선화루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진 여러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의현 관아에서 연회나 집회 등을 목적으로 세운 누각으로 경치가 빼어난 금호강변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