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승대의 화려한 시석각詩石刻의 세계 - 동쪽면
왼쪽부터 조영석趙榮祏 퇴계이선생退溪李先生 요수신선생樂水愼先生 황고신선생黃皐愼先生 삼연김선생三淵金先生의 시가 나란히 있다.
시12 조영석趙榮祏
1738년 안음현감을 지냈으며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화가인 관아재觀我齋 조영석의 친필 시 석각이다. 수승대 거북바위 동쪽 바위면에 첫 번째로 새겨있다.
칠언절구로 끝부분에 ‘계해사월癸亥四月(1743) 조영석서趙榮祏書’라 새겨있어 관아재의 친필로 보인다.
조영석은 53세 되던 1738년에 안음현감으로 취임해 5년간 봉직하다 1743 계해년 4월에 임기를 마치고 떠나면서 수승대의 거북바위에 시를 새겼다.
시의 내용은 과거로부터 전해온 거북바위의 명칭의 변천을 표현한 것으로, 시라기 보다는 수승대 명칭이 있기까지의 변천사를 기록한 석각으로 보인다. 수송대, 암구대, 수승대가 차례로 열거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요수대가 나온다. 요수선생이 머물렀거나 요수선생이 이름을 지어서 요수대가 아니고 마을 주변에서 그냥 오랫동안 친근하게 불러왔던 이름이라 표현하면서 요수선생의 가르침과 유풍이 수승대에 그대로 녹아있음을 나타내었다. 조영석 현감이 이 시를 지은 때는 요수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170년 되던 해다.
요수 선생을 시로 애송한 것은 요수의 5세손으로 관아재보다 두 살 아래였던 유학자 ‘황고黃皐 신수이’ 선생과 평소 친분을 가진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라제전명수송대羅濟傳名愁送隊 신라 백제로부터 전한이름이 수송대요
요수개명암구대樂水改名岩龜臺 요수 신권선생이 개명한 이름이 암구대이다.
퇴계석명수승대退溪錫名搜勝臺 퇴계이황선생이 지은 이름이 수승대요
유풍송명요수대遺風誦名樂水臺 오래전부터 불러온 이름이 요수대이다.
계해사월일癸亥四月日(1743) 조영석趙榮祏 書
조영석趙榮祏(관아재觀我齋, 1686~1761)
산수화와 인물화에 뛰어났다. 당대의 명화가인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함께 삼재三齋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졌으며, 시와 글씨에도 일가를 이뤄 그림과 함께 삼절三絶로 불린 인물이다. 안음(현재 함양군 안의)현감으로 있던 1740년에 누각 관수루를 지었다.
시13 퇴계이선생退溪李先生의 개명시와 함께 요수신선생樂水愼先生의 요수정 주련내용이 새겨있다.
퇴계선생의 시는 내용이 거의 마모되어 육안으로 확인이 어려우나 카메라로 촬영하여 확대해보면 글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난다. 석각 끝부분의 퇴계선생 관인은 돋을새김으로 드러내어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수승명신환搜勝名新換 수승이라 대 이름 새로 바꾸니
봉춘경익가逢春景益佳 봄 맞은 경치는 더욱 아름답구려.
원림화욕동遠林花欲動 저멀리 숲에선 꽃망울 터져오르고
음학설유매陰壑雪猶埋 그늘진 골짜기엔 봄눈이 희끗희끗.
미우수심안未寓搜尋眼 수승대를 찾아 구경하지 못했으니
유증상상회惟增想像懷 가슴속에 회포만 쌓이는구려.
타년일준주他年一樽酒 뒷날 한 동이 술을 안고 가
거필사운애巨筆寫雲崖 큰 붓 잡아 구름 벼랑에 시를 쓰리다.
퇴계이선생退溪李先生
요수 선생의 시이다. 정자를 직접 지은 요수정의 주련으로도 걸려있다.
수송대개명愁送臺改名 암구대시왈岩龜臺詩曰
임천감노지林泉甘老地 숲과 물이 함께라면 늙기도 수월할 터
소함복청유小檻卜淸幽 작은 정자 그런대로 맑고 그윽해
동학유선적洞鶴留仙跡 골짜기에 내리는 학 신선의 자취
암구송객수巖龜送客愁 시름 달래기엔 거북바위가 안성맞춤
등림유자적登臨惟自適 이곳에 노닐며 자신에 만족할 뿐
문달부수구聞達不須求 헛된 이름을 좇지 않으리.
시간어초반時看漁樵伴 풀 베는 아이, 고기잡는 늙은이 벗삼아
상심벽간두相尋碧澗頭 이따금 푸른 물에 발을 담그네.
요수신선생樂水愼先生
시14 황고신선생黃皐愼先生 삼연김선생三淵金先生
퇴계선생시의 운을 차운한 황고신수이와 삼연김창흡의 시이다.
차운은 1행 가佳, 2행 매埋, 4행 애崖이다.
흘연천반석屹然天半石 홀연히 천석이 드러나니
풍물전청가風物轉淸佳 풍광이 바뀌어 밝고 아름답도다
백대형하섭百代形何燮 백대의 형상이 어찌 변할까
천추경불매千秋景不埋 오래도록 경치 묻히지 않았네
운귀전헌촉雲歸前獻躅 구름속에 들어가 자취를 찾으니
산앙준생회山仰浚生懷 산같이 우러르는 생각 떠오르네
독립항음화獨立沆吟火 혼자서 오래도록 혼자 읇조리니
사양영점애斜陽映漸崖 기우는 햇볕 단애를 비추더라
황고신선생黃皐愼先生 신수이愼守彛 《명승수승대 - 오필제》거창문화원
수승대감의搜勝坮堪倚 우뚝한 수승대가 하늘에 기대섰고
연연수석장連筵水石長 잇닿은 수석 경치 길이 뻗혀 장관이네.
우겸풍파의雨兼風破意 비 오자 바람 부니 뜻은 깨어지고
청우일침광晴又日沈光 날 개이자 밝은 햇볕 물에 잠기네
조벽동동촉照壁憧憧燭 절벽 비춘 촛불 빛 흔들거리고
임계감감상臨溪憾憾床 냇가에 다다르니 평상이 흔들리네
십년원학몽十年猿鶴夢 10년 동안 원학동을 꿈 꾸어오다
수료일조망輸了一朝忙 하루아침 쫒긴 생각 떨쳐 버렸네.
삼연김선생三淵金先生 김창흡 《위천면지》
1708년 3월 안의삼동을 유람하면서 지은시이다.
거창문화원에서 나온“명승 수승대”와 최석기 선생의 “조선선비들의 답사일번지”에는 삼연김창읍의 시 1구에 ‘수송대愁送臺’로 기록하며 삼연김창읍의 시가 수송대 란 명칭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지은 시라고 소개하고 있다. 위천면지 자료에는 1구에 ‘수승대搜勝坮’라고 기록하고 있어 정 반대의 내용으로 보았다. 여러 사진을 찍어 판독을 해보니 삼연김창흡의 수승대 석각에는 ‘수승대搜勝坮’라고 새겨있다. 이 시가 퇴계이황의 개명시를 찬성하는 신수이의 시 방향에 새겨져있는 것으로 보아 ‘수승대搜勝坮’가 맞는 것 같다.
시15 지현知縣(현령) 한복연韓復衍(1810년경)
한복연 현감의 시가 수승대 동편에 새겨있다.
이름에 대한 경외와 수승대의 빼어난 자연경관을 찬탄하는 내용이다.
삼국하년송객수三國何年送客愁 삼국 어느해 근심으로 길손 보냈는가
태암부어수대류苔岩不語水臺流 바위 이끼는 말이 없고 물은 대를 따라 흐르네
대명일변선생필坮名一変先生筆 누대의 이름이 선생의 붓으로 한번 바뀌니
석색천광즉승구石色泉光卽勝區 돌색과 물빛이 곳 승지이더라
지현知縣 안의현감安義縣監 한복연韓復衍
시16 화사花史박영화朴永和
퇴계선생시의 운을 차운한 화사 박영화의시가 남쪽면에 새겨있다. 차운은 1행 가佳, 2행 매埋, 4행 애崖이다.
화림구면상花林舊面上 화림 옛 고을 위쪽
수승일록가搜勝一綠佳 수승은 오직 푸르고 아름답구나
년고송전로年古松全老 소나무는 해가갈수록 늙어지고
태명자불매苔明字不埋 이끼는 글자를 묻지 않았네.
어희군자연於戱君子然 군자의 놀이 그러하고 戮
용시후생회容是後生懷 얼굴은 후생의 회포라
인지□기족仁智□期足 인과 지에 만족하니
벽류간취애碧流間翠崖 맑은 물은 절벽 사이로 흐르네
화사박영화근차花史朴永和謹次
《명승수승대 - 오필제》거창문화원
시17 괴당槐堂 신대성愼大晟
가장 최근에 지은 시로 퇴계선생시의 운을 차운한 신대성의시가 남쪽면에 새겨있다. 차운은 1행 가佳, 2행 매埋, 4행 애崖이다.
개축시改築詩 -1966년 수승대의 축대를 다시 쌓고 지은 시이다
탄단신환축坦壇新換築 평평한 단을 새롭게 쌓으니
대안경증가臺顔更增佳 대의 아름다움이 더욱 더하네
연징개경조淵澄開鏡照 맑은 계곡은 거울처럼 비추고
송로소태매松老掃苔埋 노송은 이끼 마져 묻어버리네
요조장수지樂祖藏修地 요수선조께서 은둔하여 수행하던 땅
도옹창유회陶翁暢幽懷 퇴계의 품은 뜻 그리워 진다
퇴모견년사退慕茾年事 퇴계선생을 그리며 해를 보내는데
무의우단애無意遇丹崖 무심히 벼랑에서 붉은 글씨를 만나네
괴당槐堂 신대성愼大晟
신대성愼大晟
1959년 경남도지사를 지낸 신도성의 형이다. 1966년에 새겼다.
'석각 거창 수승대 암구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창 수승대 암구대 석각 4 - 시석각詩石刻의 세계 (0) | 2021.12.27 |
---|---|
거창 수승대 암구대 석각 3 - 수승대, 암구대岩龜臺 5경 (0) | 2021.12.27 |
거창 수승대 암구대 석각 2 -이황, 신권, 임훈 (0) | 2021.12.27 |
거창 수승대 암구대 석각 1 - 거북바위 전경 (0) | 2021.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