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가로로 보면 산줄기요 세로로 보면 봉우리라.橫看成領側成峰
  • 불개구소시치인不開口笑是痴人 입 벌려 웃지않으면 바보!!
  • 산불재고山不在高 유선즉명 有仙則名 산은 높고낮음에 달린 것이 아니고 신선이 살아야 이름을 날린다.
석각 거창 수승대 암구대

거창 수승대 암구대 석각 3 - 수승대, 암구대岩龜臺 5경

by 검은마루 2021. 12. 27.

1 수승대, 암구대岩龜臺 5경

거북바위에는 짤막한 전설도 얽혀 있다. 장마가 심했던 어느 해, 불어난 물을 따라 윗마을 북상의 거북이 떠내려 왔다. 이곳을 지키던 거북이 그냥 둘 리 없어 싸움이 붙었는데, 여기 살던 거북이 이겼다. 그때의 떠내려온 거북이 죽어 바위로 변했으니 암구대가 바로 그것이라 한다.

 

원학동 월성계곡 곳곳에 19경을 정해 구연서원지에 기록하고 있는데 현재는 14경으로 정리하고 있다.

구연 14경은 1)연하굴, 2)장주갑과 반타석, 3)용우암과 원타굴, 4)연반석과 사담, 5)구룡폭과 용반, 6)자고암과 약어담, 7)남정, 8)연암, 9)사암, 10)자암과 무오동암, 11)별암, 12)욕기암과 풍우대, 13)석송, 14)변계천이다.

 

이곳 수승대 주변에는 일곱가지 명소가 집중되 있다.

 

첫 번째 , 연하굴煙霞窟이다. 10여명이 비와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굴이 형성이 돼 있는데 이곳은 암구대의 거북이 입을 벌리고 있는 곳이다.

연하굴煙霞窟

 

두 번째, 장주갑藏酒岬과 반타석盤陀石으로

 

연하굴 입구에 술동이처럼 생긴 구덩이가 있는데 이를 장주갑이라 하고, 그 앞에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넓은 반석을 반타석이라 한다. 선비들이 장주갑에 술을 부어 놓고 시회詩會를 열던 곳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의 모임을 연상케 하는 좋은 장소이다. 마치 내가 과거로 돌아가 선비가 되어 자연을 찬탄하는 시를 읊는 연상을 해볼 수 있는 곳이다. 장주갑 석각은 맞은편 암구대(거북바위)에 새겨있다.

장주갑藏酒岬

 

장주갑藏酒岬 석각
연하굴煙霞窟과 반타석盤陀石

 

세 번째, 용우암龍羽巖과 원타굴黿鼉窟로 거북바위와 요수정 사이의 물 속에 반짝이는 바위가 있는데 용의 날개처럼 생겨 용우암이라 하며, 그 구연 물 속 자라가 사는 굴을 원타굴이라 한다.

 

네 번째, 연반석硯磐石과 사담蛇潭, 세필짐洗筆㴨으로 거북바위 위쪽 구연교 아래 하얀 반석위에 바위틈을 따라 뱀처럼 길게 두 줄기 맑은 냇물이 흐르고 있는데 이곳을 사담이라 하고 반석 위 평평하며 넓은 웅덩이를 벼루를 가는 곳이라 하여 연반석이라 새겼다. 그 옆 길게 수로를 파내 세필짐이라 새기고 흐르는 물에 붓을 씻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세필짐洗筆㴨-붓을 씻는곳
연반석 硯磐石 - 벼루
사담蛇潭 연반석硯磐石 세필짐洗筆㴨이 한눈에 보인다.-수승대 위에 올라서서

 

다섯째, 구룡폭九龍瀑과 용반龍盤

 

구연교 아래로 세차게 흐르는 작은 폭포를 구룡폭포라 하고 그 옆 항아리 처럼 생긴 웅덩이를 용반이라 하는데 폭포의 물이 불어났을 때 물결을 거슬러 오르던 물고기들이 자연이 만든 어항에 갇히는 곳이다. 위 네 번째의 사담 대가리부분으로 웅덩이를 용반이라 한다.

구룡폭九龍瀑
용반龍盤

 

옛 선비들의 창의력과 상상력, 기획력은 나의 상상을 초월한다. 자연의 형태를 보고 이름을 붙여 생활속에 끌어들여 함께 한 것이다.

수승대 너럭바위 연하굴 앞 반타석 위에서 스승은 장주갑에 술을 채우고 선비들은 연반석과 세필짐에서 붓과 벼루를 준비하여 서로 학문을 연마하던 그림이 연상된다.

스승과 제자, 혹은 오랜 친구가 모여 먹을 갈고 시를 주고받으며 장주갑에서 차를 나눠 마시는 상상을 해보니 몸과 마음에 자연속에 동화되어 산과 계곡과 하나 되는 것 갔다.

 

2 수승대의 역사를 나타내는 석각 - 누가 주인인가

 

수승대에는 다녀간 선비들이 다양한 형태로 흔적을 남겼다. 가장 오래된 인물로 보이는 척암 성윤동, 요수 신권과 갈천 임훈, 죽헌 조숙과 동계 정온의 후손에 의해 새겨진 이름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조상이 오랫동안 암구대를 지켜왔다는 표식으로 대부분 후대에 새겨진 것이다.

수승대 축조와 관련된 석각이 남아있다.

 

①화림지花林誌에 의하면 병마사 척암성윤동이 많은 돌을 주어다가 대에 오르는 계단 층대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고 암구대 북쪽 바위 암면에 이를 표시하는 석각문이 새겨있다.

척암성공滌菴成公 축단대상築壇臺上 방천대하防川臺下

척암성공滌菴成公축단대상築壇臺上방천대하防川臺下

척암 성윤동이 대위에 단을 축조 하고 대아래 뚝을 쌓았다.

성윤동成允仝은 호가 척암滌菴이다. 1450년 ~ 1540년대 인물이며군수와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수승대에 새겨진 인물 중 가장 오래된 인물로 보인다.

 

②수승대 북쪽 암면에는 퇴계선생과 갈천선생의 시와 함께 ‘갈천장구지대葛川杖屨之臺(갈천선생이 지팡이 집고 신발 끌던 곳)’ ‘퇴계명명지대退溪命名之臺(퇴계선생이 이름지어준 곳)’라 새겨 있고 옆에 1810년에 군수 한복연이 새겼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③서편 정면에는 ‘구연동요수대龜淵洞樂水臺’라 새겨 요수선생이 오랫동안 구연동에 은거하였다는 기록을 바위에 새겼다.

 

④암구대의 동쪽에는 ‘요수선생樂水先生축단대상築壇臺上방천대하防川坮下’라 각이되어있다.

반대편에 척암 성윤동이 새긴 각과 같은 내용이다. 같은 일을 했기 때문이리라.

요수선생이 축대를 만들고 소나무를 심었다고 하는 축단 - 요수대

 

⑤서편에는 ‘요수장수지대樂水藏修之臺(요수선생이 큰 뜻을 품고 숨어서 수행한 곳)’라 새겼고 암구대에서 독립적으로 떨어진 곳에 ‘요수음영지대樂水吟詠之臺(요수선생이 시와 노래를 읊은 곳)’라 새겼다. 모두가 후손들에 의해 새겨진 석각표시들이다.

요수음영지대樂水吟詠之臺(요수선생이 시와 노래를 읊은 곳

 

⑥관수루觀水樓 옆 바위에는 요수신선생장수동樂水愼先生藏修洞욕기암浴沂岩, 그 뒤쪽 요수정樂水亭앞 바위에는 영귀정詠歸亭이 새겨있다.

 

욕기암과 영귀정은 논어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공자가 제자들에게 각자의 포부를 이야기 하라고 하자 증점이 “늦은 봄 봄옷이 차려지면, 어른 오륙 인과 아이 육칠 인으로 기수에서 목욕하고(욕호기浴乎沂),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풍호무우風乎舞雩), 노래하며 돌아오겠습니다(영이귀詠而歸)” 하니 공자께서 찬탄하시며 나도 너와 함께 하겠노라 한데에서 나온 것이다.

영귀정詠歸亭

 

⑦요수선생이 축대를 쌓아 만든 섬에 소나무를 심은 군락지가 있다. 이곳을 석송이라 하고 바위에 새겼다.

요수 신권선생과 관련된 지명각자가 많이 나온다. 수승대와 인연 있고 다녀간 선비들의 역사적 흔적이 바위에 새겨져 지금껏 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