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천추寶藏千秋
돌도사와 떠나는 석각石刻기행 청암사 ②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청암사원靑巖寺院
청암사 일주문 밖 도로에는 땅에서 솟아난 듯한 바위 앞 ․ 뒤 양면으로 나무아미타불과 청암사원이 새겨있다. 이곳이 아미타불이 계시는 절이며 청암사임을 알리고 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청암사원靑巖寺院 구세九歲 김완호(아홉살 김완호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새긴 것 같다.)
불령동천佛靈洞天
대시주大施主 최송설당崔松雪堂 경신庚申1920춘서春書 주지김대운住持金大運
자연바위에 공덕을 새겨 뜻을 기리고 있다.
최송설당崔松雪堂 1855∼1939
본명은 미상이며 송설당松雪堂은 호이다.
1886년(고종 23) 아버지가 죽고 이어 남편과도 사별하자, 39세 때 부처님께 귀의하여 정진하였다. 그 뒤 서울에 올라와 권문세가의 부인들과 교제하던 중 입궐하게 되어 영친왕의 보모가 되었으며, 귀비貴妃에 봉하여지고 고종으로부터 송설당이라는 호를 하사받았다.
이후부터는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한편 금릉학원金陵學園에 기부금을 내는 등 사회사업에 힘을 기울였다. 1930년 2월 25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 전국 일간지에 학교설립을 위해 전재산을 희사할 취지를 밝힌 성명서를 발표하고, 1931년 2월 5일 전재산 30만2,100원을 희사하여 재단법인 송설학원松雪學園을 설립, 김천고등보통학교를 개교하여 오늘날의 김천중고등학교로 발전되었다.
시문에 능하여 200여수의 한시와 60여수의 국문시가를 남기고 있으며, 저서로는 ≪최송설당문집≫ 3권(1922년)이 있다.
불교에 귀의하여 당시 모든 재산을 해인사에 기증하려고 하였으나 당시 해인사는 친일 승려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어 기증을 포기하고 송설학원을 세웠다.
그의 이름이 합천 해인사와 금강산에도 새겨 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나무아미타불이 새겨진 바위위에 만개한 연꽃이 새겨있고 아래에 인화仁化라 새겼다. 글을 쓴 스님으로 추정된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 여산폭포 다리 밑에 새겨있다.
팔공산 도림사 월간 도리도리 2017년 2월호
'석각 石刻'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합천 연호사烟湖寺 함벽루涵碧樓 석각 ③ (0) | 2018.01.18 |
---|---|
합천 연호사烟湖寺 함벽루涵碧樓 석각 ② (0) | 2017.11.07 |
합천 연호사烟湖寺 함벽루涵碧樓 석각 ① (0) | 2017.11.07 |
청암사 3 성명석각姓名石刻 (0) | 2017.11.07 |
청암사 1 (2) | 2017.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