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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로로 보면 산줄기요 세로로 보면 봉우리라.橫看成領側成峰
  • 불개구소시치인不開口笑是痴人 입 벌려 웃지않으면 바보!!
  • 산불재고山不在高 유선즉명 有仙則名 산은 높고낮음에 달린 것이 아니고 신선이 살아야 이름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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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연호사烟湖寺 함벽루涵碧樓 석각 ① 보장천추寶藏千秋 돌도사와 떠나는 석각石刻기행 합천 연호사烟湖寺 함벽루涵碧樓 석각 ① 연호사烟湖寺 석각 연호사 전경 연호사烟湖寺 석각 연호사烟湖寺 합천 연호사烟湖寺는 해인사의 말사로 신라 선덕여왕12(643)년에 와우 선사가 창건 했다. 백제 윤충장군이 2만의 대군을 이끌고 대야성을 함락 시켰는데, 그때 신라장병 2천여 명이 전사하고 1천여 명이 포로로 잡힌 대야성의 전투에서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 합천의 성주는 김춘추의 사위인 김품석 이었는데 그는 민생을 돌보지 않고 오히려 민심을 이반 시키고 뒤숭숭하게 해서 결국은 백제의 공격을 받고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체 항복해서 죽임을 당했다. 당시 검일이라는 평민은 아내를 김품석에게 빼앗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윤충이 이끄는 백제군에게 성문을 .. 2017. 11. 7.
청암사 3 성명석각姓名石刻 보장천추寶藏千秋 돌도사와 떠나는 석각石刻기행 - 청암사 ③ 성명석각姓名石刻 호계虎溪가 새겨있는 계곡 바깥쪽 바위에는 임수양林秀養, 홍순모洪淳謨, 민동혁閔東爀, 민백능閔百能, 민백역閔百易 이유인李裕寅, 최공득崔公得, 이영수李暎洙 子 이항주李恒柱, 김연석金淵錫 子 김위권金渭權, 서양은徐兩恩, 유대권柳大權, 유한기柳漢起, 문성목文性牧 子 문병숙文炳璹, 문종범文鐘範 등이 새겨있다. 호계虎溪 홍순모洪淳謨 민동혁閔東爀 서양은徐兩恩 유대권柳大權 이유인李裕寅 최공득崔公得 이유인李裕寅 대표관직으로 파주목사, 함경남도관찰사, 궁내부특진관, 한성부판윤, 1901년 경상북도관찰사를 지냈다. 1902년 말 탁지부대신임시서리가 되었고, 한성부판윤 · 시종원경 · 경무사 등을 두루 역임한 뒤, 1904년 중추원부의장이 되었다. 같.. 2017. 11. 7.
청암사 2 보장천추寶藏千秋 돌도사와 떠나는 석각石刻기행 청암사 ②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청암사원靑巖寺院 청암사 일주문 밖 도로에는 땅에서 솟아난 듯한 바위 앞 ․ 뒤 양면으로 나무아미타불과 청암사원이 새겨있다. 이곳이 아미타불이 계시는 절이며 청암사임을 알리고 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청암사원靑巖寺院 구세九歲 김완호(아홉살 김완호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새긴 것 같다.) 불령동천佛靈洞天 대시주大施主 최송설당崔松雪堂 경신庚申1920춘서春書 주지김대운住持金大運 자연바위에 공덕을 새겨 뜻을 기리고 있다. 최송설당崔松雪堂 1855∼1939 본명은 미상이며 송설당松雪堂은 호이다. 1886년(고종 23) 아버지가 죽고 이어 남편과도 사별하자, 39세 때 부처님께 귀의하여 정진하였다. 그 뒤 서울에 올라와 권문세가의 부.. 2017. 11. 7.
청암사 1 보장천추寶藏千秋 돌도사와 떠나는 석각石刻기행 해인사-홍제암-용암리-단지봉-수도산-수도암-청암사 청암사 청암사는 해인강원 시절 정대불사라는 큰 행사를 마치고 해마다 소풍가듯이 떠났던 사찰이다. 말이 소풍이지. 해인사에서 홍제암 뒷산을 넘어 거창 가북 용암마을을 지나 단지봉에서 노래한곡 부르고 불령산 수도암에서 점심공양 후 산넘어 가면 청암사이다. 산을 세 개나 넘는 7시간에 걸친 대장정이다. 1996년 치문반(1학년)때 젊은 패기로 빠른 걸음으로 뛰다시피 하며 앞에 가던 윗반스님들을 지나 선두권에서 산행을 했다. 수도암 산행을 마치고 다음날 우리는 윗반스님들께 불려가 무릎 꿇고 경책을 받아야 했다.  산행도 수행으로 단체 산행시는 질서를 유지하며 순서대로 좌차를 지켜 안행하듯이 산행을 해야 하는데 윗반 스.. 2017. 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