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서울 나들이. 저녁 모임시간보다 6시간 먼저가서 주변에 있는 인왕산과 백악산을 다녀오기로 계획. 인왕산에서 걸어서 옥천암까지... 날씨는 무지 쾌청합니다.
인왕산(선바위, 해골바위, 치마바위, 기차바위), 창의문(자하문) ,북악산北岳山, 청운대, 1.21소나무, 백악마루, 곡장(곡성), 숙정문, 백사실, 불암, 세검정, 홍지문(오간대수문), 옥천암(보도각 백불), ........대략 10 키로
옥천암까지 5시 30분까지 가야합니다. 인왕산 국사당에서 12시 출발!!
오늘 가야할 계획된 일정.
치마바위
치마바위의 이름 유래와 관련한 조선 왕조 일화가 유명한데, 조선 중종의 왕비였던 폐비 신씨는 날마다 중종이 있는 경회루 쪽을 향해 매일 시비를 시켜서 치마를 이 바위에 걸쳐 놓아 보이게 하였다 한다. 이러한 폐비 신씨의 절개를 기려 치마바위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바위 오른쪽부터 첫째 열에 동아청년단결東亞靑年團結(동아청년단결), 둘째 열에는 皇紀 二千五百九十九年 九月 十六日(황기 이천오백구십구년 구월 십육일), 셋째 열에는 조선총독미나미지로朝鮮總督南次郞(조선 총독 미나미 지로)라는 큰 글씨의 순서로 쓰여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보다 약간 왼쪽으로 사이를 띄어 ‘한 열에 28글자씩, 네 줄 길이’로 대일본청년단대회를 개최한다는 사실과 기념 각자(글자를 새김)를 남기는 연유를 서술한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1939년 9월 16일, 17일 양일간에 걸쳐 대일본청년단대회가 경성(현 서울)에서 열렸는데 이것을 기념한 글씨를 학무국이 주도하여 인왕산의 얼굴인 치마바위에 새겼던 것이다."
(이한성 교수의 글에서 발췌)
일제강점기에 새겼던 글씨는 파내었습니다.
산행중에 젊잖은 중년 아저씨가 등산객 부부에게 사진을 찍어주신단다. 이리 저리 포즈를 취하라고 하시고 “아주 좋습니다. 자 90도 돌아서...좋와요. 예술입니다...” 하며 사진 찍어주는 봉사를 하고 계신다. 그러며 잊지 않는 말씀...
“다이소가면 흰색 액자 싼 것이 있으니 사서 끼워너으면 예술작품이 될 겁니다. 검은색 액자는 사지마세요. 영정사진이 될수 있습니다.”
나에게도 사진을 찍어주셨다. 연신 “예술입니다. 환타스틱...아주 좋와요” 감탄사를 연발하신다. 이분이 인왕산 산신아닐까. 오늘 하루 기분 좋을것 같다. 인왕산 기운 제대로 받아갑니다.
북소문역할인 창의문, 자하문 1920년대 사진과 거의 흡사합니다. 도로개설로 끊어진 부분 빼고는...
다음장에 2편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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