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정리, 촬영 2011-2015
참고 서적자료 - 보장천추(비밀의 계곡) 종현스님 - - 해인사 출판부
저자 종현 스님이 돌도사 본인으로 2004 - 2015년까지 해인사에 있으면서 월간해인 편집장을 지낼 시 소리길이 만들어 졌고 최치원과 가야산 19명소에 대해서 바람처럼 찾아다니며 사진촬영하고 조사해 발간한 책이 보장천추입니다. 벌써 발간한지가 8년이 넘었습니다.당시 책에 담았던 사진과 내용을 축약하여 블러그에 공개하면서 많은 분들이 가야산과 홍류동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로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개념정리부터 하고 갑니다.
가야산 13명소
최치원이 천년전 이름을 붙이고 새긴 홍류동 13명소(홍류동 중심 - 계곡 하류에서 상류로)
무릉교, 칠성대, 홍류동, 체필암, 음풍뢰, 취적봉, 완재암, 광풍뢰, 제월담, 분옥폭, 낙화담, 첩석대, 학사대
가야산 19명소
1918년 최치원이 명한 13명소에 새로이 여섯 곳을 추가하여 19명소를 명명하고 각 장소마다 예운 최동식 거사가 제영시구題詠詩句를 붙인 19명소가 있다.(홍류동과 해인사, 가야산 중심)
멱도원, 축화천, 무릉교, 칠성대, 홍류동(8곡), 농산정, 체필암, 음풍뢰(5곡) ,취적봉, 완재암,(3곡), 광풍뢰(6곡) ,제월담, 분옥폭, 낙화담(4곡), 첩석대(2곡), 회선암(1곡), 학사대, 봉천대, 우비정
홍류9곡
홍류동 계곡의 아홉 명소(홍류동 계곡 물길중심-계곡 상류에서 하류순으로)
회선암(1곡) 첩석대(2곡) 완재암(3곡) 낙화담(4곡) 음풍뢰(5곡) 광풍뢰(6곡) 홍류동(8곡)
소리길 입구
1 멱도원覓桃園
가야산을 바라보는 홍류동 초입이 마치 무릉도원을 바라보는 것 같다 하여 멱도원, 갱맥원이라 붙였다.
2 축화천逐花川 (옛 가마소沼 부근)
영남문학회에서 펴낸 책에는 축화천을 가야도기공장 가마소 맞은편으로 표기하고 있다. 도기공장 앞은 넓은 하천에 흰빛과 검은 빛의 바위가 평평히 넓게 퍼져있고 수심이 얕아 춘풍추우春風秋雨에 춘초화春草花 추풍옆秋風葉이 붉게 물들이며 떠내려 오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어 축화천의 의미와 상통하는 것 같아 축화천을 가마소 앞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3 무릉교武陵橋 (해인사로 들어가는 다리가 놓여 졌던 자리.)
시멘트 다리가 2002년 태풍 매미에 유실되어 지금은 그 흔적만이 남아있다. 무릉교 맞은편 민가에는 옛날 무릉교 다리를 놓을 때 논과 나무를 시주한 분들의 공덕비 2기 “무릉교교목대시주경치불망비1903” 와 “무릉교 김덕연혜시비1865”가 바위에 새겨져 있고, 암반에는 해인사 땅의 결계지를 표시하는 “대지계내大地界內 물입택묘勿入宅墓”라는 문구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집 마당에는 허름해 보이는 비석이 1기 서있는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어수선하게 무작위로 표기되 있다. 자세히 보면 무릉홍교武陵紅橋라고 각이 되어 있다.
1725년 3월 가야산을 다녀간 ‘정식’의 기록에는“ 무릉교武陵橋에 이르니 바로 홍류동紅流洞의 하류이다. 돌을 연결하여 공중에 다리를 만들었는데, 형상이 기다란 무지개 같았다. 또 돌을 다듬어 용 세 마리의 머리를 만들었는데, 거꾸로 머리를 늘어뜨려 물을 마시는 형상이었다. 용의 입에는 풍경(風磬)을 매달아 바람이 불면 소리가 났다”라고 되어있다.
4 칠성대七星臺
무속인이 기도중 별(칠성)이 떨어진 곳(무릉교 위쪽 서편)으로 신라 최치원이 지정한 13명소중 하나이다.
조선시대 선비 옥소玉所 권섭權燮이 지은 《가야산을 유람한 것을 적다遊伽倻山記 1711》에는 “골짜기 밖의 흐르는 물 사이에 반석 하나가 있는데, 그 모퉁이에 '尹, 孫, 金, 具, 梁, 洪, 鄭' 등 일곱 성이 나란히 새겨져 있지만 유람 온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겠으니, 일부러 그 이름마저 숨겨 뒤에 오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혹케 한 것이다. 그 꼭대기의 평평한 곳에 '칠성대七星臺'라 새겼는데, 아마 일곱 사람의 성을 대의 표면에다 남기고 이로써 호를 삼아 '칠성(七星)'이라고 떠벌려 자랑한 게 아니겠는가?” 라고 되어있다.
칠성대에 장난기 있는 선비들이 일곱성씨를 바위에 새겼다는 기록이다.
5 홍류동紅流洞 (홍류구곡중 8곡, 봄꽃과 가을단풍에 붉게 물들어 흐른다)
‘홍류동’은 홍류동계곡 전체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최치원선생의 둔세시가 새겨져 있는 농산정과 치원대 주변을 지칭하기도 한다. 홍류동 주변에는 여기가 홍류동임을 밝히는 대형 음각이 여러 곳에 새겨져 있다. 그중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홍류동 글씨는 2002년 태풍에 깨어져 나가고 지금은 동洞자의 한 부분만이 남아 글자의 위치를 말해주고 있다.
치원대
최치원의 둔세시가 음각되어 있는 바위 치원대에는 고교와 농산 네글자만을 눈으로 확인할수 있다.
환선대喚仙臺
환선대는 농산정 건너편 계곡물에 둘러싸인 너럭바위를 지칭한다. 옛날 신작로가 생기기 전에는 자연스럽게 도로쪽 길과 연결되어 사람들이 자연스레 들어갈수 있었으나 지금은 도로가 가로질러 환선대에는 내려갈수 없다.
명월담明月潭
명월담은 홍류동계곡 농산정을 건너가는 다리 아랫방향이다. 넓은 너럭바위가 계곡물을 가두고 있는 형국이다. 맞은편 절벽에는 명월담 명문과 홍류동이 맑은물의 기원으로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문이 새겨져 있다.
6 농산정籍山亭
농산정의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수 없으나 1936년 정진기 합천 군수가 지금의 정자를 중건하였다. 정자 앞에 최치원의 둔세시가 새겨있는 치원대致遠臺가 있다.
7 취적봉吹笛峰
홍류동을 따라 차를 타고 들어오다 보면 도로 안쪽으로 튀어나온 바위가 있다. 취적봉이다. 그 모습이 선바위 모양을 하고 있고 바위 상부에는 피리 입대 모양의 바위가 서있어 취적봉이라 한다.
이 역시 최치원이 지정한 13명소에 속하며 바위에 취적봉 암명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것이 최치원이 새긴 명문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붓글씨의 두께를 엷게 따낸 형태의 면각面刻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오랜 기간 취적봉의 이름을 바위에서 찾아 헤매었지만 이 역시 시공時空과 자연의 힘을 빌어야 되는 것 같다. 비가 온 뒤 바위전체가 물에 젖어있는 상태에서 햇볕이 비출때 음각으로 새긴 취적봉 암명이 은은히 드러난다.
취적봉에는 조선 후기 가야산을 다녀간 여러 권문세도가나 선비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있다. 동국대지도를 만든 정항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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